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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장기보관 할 때 곰팡이와 변색 없이 관리하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지난봄에 엄마 생신 잔치하면서 오랜만에 장롱 깊숙한 곳에 넣어뒀던 한복을 꺼냈는데, 저고리 깃 근처가 누렇게 변색되어 있어서 정말 마음이 쓰리더라구요. 분명 드라이클리닝까지 맡기고 비닐에 씌워서 잘 넣어뒀다고 생각했는데, 몇 년 만에 꺼내 보니 얼룩도 생기고 소매 부분에는 작은 곰팡이 자국까지 보였거든요. 그때부터 한복 보관법을 제대로 알아봐야겠다 싶어서 여기저기 물어보고 찾아본 내용을 정리해 봤어요.

 

한복은 평면 재단이라서 서양식 옷처럼 옷걸이에 걸어두면 안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분들이 의외로 많아요. 어깨선이 없고 소매가 일자로 쭉 뻗은 구조라서 오래 걸어두면 무게 때문에 깃이 내려앉고 소매 부분이 늘어져 버리거든요. 특히 치마는 자수나 금박이 들어간 경우가 많은데 걸어두면 중력 때문에 장식이 뜯어지거나 실밥이 풀릴 수 있어요. 그래서 한복은 반드시 개어서 상자에 넣어 평평하게 보관하는 것이 기본이에요.

 

접는 방법도 아무렇게나 하면 안 되고 순서가 있어요. 여자 저고리는 먼저 펼친 뒤에 고름을 가지런히 모아서 서너 번 접고, 소매는 옆선에 맞춰 깃 방향으로 접어 올립니다. 그러고 나서 저고리 자체를 반으로 접는데, 이때 접히는 부분에 얇은 한지나 부드러운 종이를 끼워두면 구김이 훨씬 덜 생겨요. 치마는 주름이 상하지 않게 주름 방향대로 세로로 길게 개서 세 번 정도 접어주면 되고, 남자 바지는 허리춤을 맞춰 반으로 접은 뒤 다시 한 번 접어서 보관해요. 상자에 넣을 때는 가장 무거운 치마나 두루마기를 아래에 두고 그 위로 저고리, 속옷 순으로 가벼운 것을 얹어 쌓아주시면 아래쪽 옷이 무게를 버티면서 위쪽 옷의 모양도 유지돼요.

 

습기와 곰팡이를 막는 게 한복 보관의 제일 큰 숙제예요. 우리나라는 여름에 습도가 80%를 훌쩍 넘기기 때문에 옷장 안쪽까지 습기가 차기 쉬운데, 이상적인 보관 환경은 습도 50% 전후에 온도는 18-24도 정도예요. 이 조건만 맞춰도 색 번짐이나 곰팡이 걱정이 훨씬 줄어들어요. 저는 옷장 한 칸을 한복 전용으로 비워두고 제습제를 두 개씩 넣어서 한 달에 한 번은 체크하고 있어요.

 

한지가 생각보다 훨씬 유용한 도구예요. 한지는 통기성이 좋으면서 동시에 방습 기능까지 해주거든요. 실크 소재 한복은 특히 예민해서 한지로 옷을 감싼 뒤에 보관하는 게 좋고, 그 위에 방충제를 두는데 이때 주의할 점은 방충제가 직접 옷에 닿지 않게 해야 한다는 거예요. 나프탈렌 같은 강한 성분이 닿으면 얼룩이 생기거나 색이 변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천연 방충제를 쓰고 싶으시다면 잘 말린 담뱃잎 가루나 계피, 라벤더, 편백나무 조각을 베 보자기에 싸서 넣어두는 방법도 있어요. 저는 계피 스틱을 거즈에 싸서 옷장 네 귀퉁이에 두는데 은은한 향이 옷에도 배어서 꺼낼 때마다 기분이 좋아져요.

 

보관 상자도 어떤 걸 쓰느냐에 따라 차이가 커요. 플라스틱 상자보다는 종이 재질의 한복 전용 상자나 오동나무 상자가 훨씬 좋아요. 플라스틱은 통기가 안 돼서 습기가 갇히면 곰팡이 생기기 딱 좋은 환경이 되거든요. 오동나무는 예전부터 고급 옷 보관에 쓰던 재질인데 자체적으로 방충 효과가 있고 습도 조절도 해줘서 비싸더라도 한 번 사두면 평생 써요. 종이 상자도 괜찮은데 이왕이면 중성지로 만든 제품을 고르세요. 일반 상자는 산성이라 시간이 지나면 천에 누런 얼룩이 생길 수 있어요.

 

계절이 바뀔 때 옷장을 열어서 환기를 시켜주는 것도 중요해요. 보통 3-4월, 9-10월에 옷장 정리를 한 번씩 해주는 걸 권하는데, 이때 한복도 같이 꺼내서 그늘진 곳에서 한두 시간 바람을 쐬어주면 좋아요. 직사광선은 절대 안 되구요, 자외선에 노출되면 원단의 색이 바래고 실크는 변색이 심해지거든요. 창문 옆 그늘이나 실내 통풍 잘 되는 곳에서 말리듯 걸어두시면 돼요. 이렇게 주기적으로 관리해 주면 묵은 냄새도 빠지고 습기도 날아가서 훨씬 오래 입을 수 있어요. 특히 장마철이 끝난 직후인 8월 말에는 꼭 한 번 꺼내서 점검해 보세요. 그때가 곰팡이 피해가 가장 많이 발견되는 시기거든요.

 

한복을 세탁한 뒤에 완전히 건조되지 않은 상태로 보관하면 그게 가장 큰 문제예요. 드라이클리닝을 맡기고 찾아오면 비닐에 싸인 채로 바로 장롱에 넣기 쉬운데, 이때 비닐을 꼭 벗겨내세요. 비닐이 씌워져 있으면 화학약품 냄새가 옷에 배고 공기도 못 통해서 누런 변색이 생겨요. 드라이클리닝 후에는 하루 정도 그늘에서 펼쳐 두었다가 완전히 냄새가 빠진 뒤에 한지로 감싸서 넣는 게 정석이에요. 그리고 한복에 음식물이 묻었거나 얼룩이 생겼을 때는 집에서 직접 빨지 말고 꼭 한복 전문 세탁소로 가져가세요. 일반 세탁소에서도 실크나 금박 처리된 한복은 다루기 힘들어해서 원단 손상 사례가 제법 있거든요.

 

마지막으로 결혼한복이나 아이 돌복처럼 한두 번 입고 오래 보관해야 하는 한복은 특별 관리가 필요해요. 착용한 뒤에는 반드시 전문 세탁소에 맡겨서 얼룩과 땀을 제거한 다음 보관해야 하는데, 땀이 남아 있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색이 변하고 천이 삭아버려요. 또 결혼한복은 보통 부피가 큰데 상자 안에서 눌리지 않게 틈새마다 한지를 구겨 넣어 모양을 잡아두면 십 년이 지나도 처음 모양 그대로 꺼낼 수 있어요. 저도 앞으로는 이렇게 제대로 관리해서 엄마 한복은 더 이상 못 살렸지만 제 한복만큼은 오래오래 예쁘게 입으려구요.


The goal of life is living in agreement with nature. – Ze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