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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막 상식

목판도어록이 제작된 시기와 그 당시의 역사적 배경은 무엇인가요?


한국 불교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목판도어록은 고려 시대 불교 개혁의 중심 인물이었던 지눌(知訥, 1158-1210)의 사상과 가르침을 담은 귀중한 문헌입니다. 단순한 경전이나 설법 기록이 아니라,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종교적 흐름 속에서 제작된 만큼, 그 역사적 배경을 함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목판도어록이 제작된 시기와 그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목판도어록의 제작 시기
목판도어록은 지눌이 생전에 남긴 어록과 법문, 그리고 그와 관련된 기록들을 후대 제자들이 정리해 간행한 것으로, 본격적인 목판 인쇄는 고려 후기인 13세기 중후반에서 14세기 초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특히 조계종의 중심지였던 수선사(修禪社) 또는 송광사에서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무판에 정교하게 새겨 인쇄한 이 어록은 단순한 텍스트 전달을 넘어 불교의 교리를 널리 전파하기 위한 수단으로도 활용되었습니다.

 

고려 후기 불교 개혁의 흐름 속에서 탄생
지눌이 활동하던 고려 후기 시기는 불교의 타락과 세속화가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던 때였습니다. 당시에는 형식적인 의식 중심의 불교가 만연했고, 승려들 사이에서도 세속 권력과의 유착이 빈번했습니다. 이러한 현실에 문제의식을 느낀 지눌은 참선과 수행을 중심으로 한 ‘정혜쌍수(定慧雙修)’와 ‘돈오점수(頓悟漸修)’ 사상을 제창하며, 실천적인 불교 개혁을 시도했습니다. 목판도어록은 이러한 지눌의 사상과 가르침이 집약된 결과물입니다.

 

고려의 인쇄 문화와 유교-불교 갈등의 시기
고려는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인쇄 기술을 보유한 나라였습니다. 팔만대장경으로 대표되는 금속 활자와 목판 인쇄 기술은 다양한 불교 경전과 어록의 제작에 활용되었으며, 목판도어록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는 불교가 사회 전반에서 비판을 받기 시작하고, 유교적 이념이 점차 힘을 얻기 시작하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목판도어록의 제작은 단순한 종교 문헌 간행을 넘어, 불교의 정신을 보존하고 전승하려는 시대적 노력의 일환이었습니다.

 

승려 교육과 교단 체계 정비의 일환
지눌과 그 제자들은 단순히 개인 수행에 그치지 않고, 승려 교육을 체계화하고자 했습니다. 목판도어록은 이러한 승려 교육의 교재로도 널리 활용되었으며, 선종 교단의 조직적 성장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문답 형식으로 구성된 이 어록은 학문과 수행을 동시에 강조하는 방식으로, 당대 불교 교육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문화재로서의 역사적 가치
목판도어록은 단순한 종교 서적을 넘어, 고려 시대의 종교 사상, 인쇄 기술, 언어 문체 등 여러 방면에서 중요한 문화재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현재 일부 목판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으며, 불교와 출판, 교육을 아우르는 복합적인 유산으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지눌이 살아간 고려 후기라는 시기는 혼란과 변화의 시기였지만, 그 안에서 그는 조선 불교의 뿌리를 닦는 사상과 실천을 남겼습니다. 목판도어록은 그 시대의 숨결을 간직한 살아 있는 기록이자, 오늘날에도 여전히 깊은 울림을 주는 텍스트입니다.

 


The goal of life is living in agreement with nature. – Ze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