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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문은 왜 세워졌을까? 영은문 철거부터 건립 과정까지 정리


얼마 전에 서대문 쪽을 지나갈 일이 있었는데, 독립문 앞을 그냥 스쳐 지나가면서 문득 궁금해지더라고요. 어렸을 때 교과서에서 분명 배웠던 것 같은데 막상 누가 왜 세웠냐고 물으면 정확하게 대답을 못하겠는 거예요. 그래서 이참에 좀 제대로 찾아봤습니다.

 

독립문이 세워진 배경을 이해하려면 먼저 영은문이라는 걸 알아야 해요. 영은문은 조선시대에 중국에서 오는 사신을 맞이하기 위해 세운 문이었거든요. 이름 자체가 은혜를 맞이한다는 뜻이라 지금 생각하면 좀 씁쓸한 이름이긴 하죠. 1407년 태종 때 처음 만들어졌고, 세종 때 다시 정비됐다고 합니다.

 

그런데 1894년에 청일전쟁이 터지면서 상황이 크게 바뀌었어요. 이 전쟁에서 청나라가 일본에 패하면서 조선과 청나라 사이의 오랜 사대관계가 사실상 끝나게 된 거죠. 그래서 1895년 2월에 영은문이 철거됩니다. 더 이상 중국 사신을 맞이할 필요가 없어졌으니까요.

 

이때 등장하는 인물이 서재필이에요. 서재필은 1895년 12월에 미국에서 귀국한 뒤, 영은문이 있던 자리에 독립문을 세우자는 구상을 합니다. 단순히 청나라로부터의 독립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어요. 1896년 6월 독립신문 영문판 사설에는 이 문이 청나라뿐만 아니라 일본, 러시아, 모든 유럽 열강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한다고 분명하게 적혀 있거든요.

 

독립문의 디자인은 프랑스 파리에 있는 에투알 개선문을 본떠서 만들었다고 해요. 설계는 외국인이 맡았지만 실제 건축 과정은 한국인 기사인 심의석이 담당했습니다. 1896년 11월 21일에 기공식을 열었고, 정부 지원과 일반 국민들의 모금으로 공사비를 마련했어요. 완공은 1898년 1월이었으니까 대략 1년 2개월 정도 걸린 셈이지요.

 

재미있는 점이 하나 있는데요. 독립문을 세울 때 영은문의 주초석 2개를 일부러 앞에 남겨뒀다고 해요. 독립문이 이 주초석을 내려다보는 형태를 취한 건데, 과거의 종속적인 외교를 경계하고 다시는 그런 일을 반복하지 말라는 의미를 담은 거라고 합니다. 이런 디테일은 처음 알았는데 꽤 인상적이더라고요.

 

그리고 지금 독립문이 서 있는 자리는 사실 원래 위치가 아니에요. 원래는 좀 더 도로 쪽에 있었는데, 1979년에 성산대로 공사를 하면서 금화터널에서 성산터널을 잇는 고가도로가 독립문 위로 지나가게 생긴 거예요. 그래서 서북쪽으로 약 70미터 떨어진 지금의 독립공원 안으로 옮겨졌습니다. 1979년 3월에 이전 공사를 시작해서 1980년 8월에 마무리됐다고 하네요.

 

현재 독립문은 사적 제32호로 지정되어 있고,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독립공원 안에 자리 잡고 있어요. 높이는 약 14.28미터, 너비는 약 11.48미터 규모입니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아치형 구조물인데 실제로 가서 보면 생각보다 웅장하거든요.

 

독립문 하면 많은 분들이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을 떠올리시는데, 엄밀히 말하면 처음 세워진 배경은 청나라와의 사대관계 청산이 직접적인 계기였어요. 물론 서재필이 밝혔듯이 모든 외세로부터의 독립이라는 더 넓은 의미를 담고 있긴 했지요. 이런 부분이 헷갈리기 쉬운데 한번 정리해두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The goal of life is living in agreement with nature. – Zeno